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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는 갈 생각을 못하였지만
남편이 루트를 기막히게 짜서
국립 중앙 박물관 만큼 멋진 곳에 다녀왔습니다.
국중박보다 사람은 적어 한가롭고
공원과 연못까지 겸비했고
제주도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넘치는 곳
국립 제주 박물관입니다.
입구에서 "제주도민이신가요?" 물으시길래
"아니요"라고 했는데 입장료는 모두에게
무료였습니다.
(그렇다면 왜 물으셨는지 의문입니다.ㅎㅎ)

제주도에 대해 그리고 이 박물관에 대해서만도
몇 부작에 걸쳐 적어야 할 정도로 내용이 많지만
오늘 급하게 글을 쓰게 만든 것은
두 형제의 편지 때문입니다.

제주도 파견이 지구 반대편에 가족을 보내는 것만큼
멀기 느껴졌던 시절에 두 형제 중 동생이
제주도에 파견을 가게 됩니다.

떠나는 날 3살 어린 동생이 형에게 쓴 편지입니다
<신묘년 초가을에 석이(이경억)가 절하고 드립니다.>
마지막 구절이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.
"형님과 저가 있는 곳, 틀림없이 조각달이 뜨겠죠."

밑의 설명에 동생을 보내는 형이 쓴 편지가 보입니다.
<석이(동생 이경억)의 탐라 행차을 보내며 드림>
"오늘 풍파에 마땅히 힘을 얻어야 하니
이별하며 두 줄기 눈물 흘리지 마시게."

동생이 제주도에 파견 나간 때가 겨우 32살입니다.
그때야 많다면 많지만요.
태풍을 만날지도 모르고
한양에서 제일 먼 곳을 간다하는 상황에서
두 형제가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주고 받는다는 것이
차분하고 의연해보이기도 합니다.
그런데 막상 한자 한글자 한글자에는
솔직한 감정이 뚝뚝 떨어져서 놀랍습니다.

저는 드라마 결말을 먼저 돌려보듯
잘 돌아왔나부터 궁금하더라고요.

그 이후에도 관직 활동 기록이 왕성하고
52, 53 두 분이 비슷한 나이에 돌아가신 것을 보니
무사히 돌아오신듯합니다^^

숙소에 와서 이 두 분이 어떤 인물인지
좀 더 찾아보았습니다.
큰 형이라고 소개되어있어 형제가 더 있나 했는데
형제는 3살 터울 둘 뿐이고
동생이 7살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
어머니가 홀로 키웠는데 둘 다 총명하고
인품도 훌륭했다네요.

형은 17살에 과거 합격,
동생은 25살에 과거에서 장원급제했다고 합니다.
그러다보니 어머니도 홀로 자식을 잘 키운 여성으로
유명했다네요.

요즘 정약용에 대한 책을 조금 읽어보고 있는데
정약전과 정약용이 주고 받는 편지에서 느꼈던
감동과 비슷해서 오늘 이렇게 여행 중에도
글을 쓰게 되었습니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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